‘최다 밥퍼 봉사상’에 빛나는 이정국 경제학 박사

4전5기 출마는, 나라와 국민에게 빚 값는 심정으로…….

김재경기자 | 입력 : 2019/11/18 [14:51]

밥퍼 봉사상에 빛나는 기인.

호계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는 길목은 다소 가파른 언덕배기, 산자락아래 곱게 물든 형형색색의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워 탄성을 지를 정도다.

 

식당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줄의 행렬은 끝이 없다. 1130분이 되자, 공익요원이 10명 단위로 어르신들을 식당 안으로 안내한다.

정갈하게 준비된 반찬을 어르신의 식판에 담아 드리는 여성 봉사자 틈에 양손으로 주걱을 쥔체 능숙한 솜씨로 밥을 푸는 청일점은 이정국 교수이자 경제학박사다. 일정한 양으로 밥을 푸는 손놀림에서 예사롭지 않은 내공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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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좀 더 주세요. 김치 좀 더 주세요. 고기는 빼고 야채를 더 …….”식판을 든 어르신마다 요구도 각각 다르다. 봉사자들은 미소로 응하며 맛있게 드세요를 연발한다. 20분쯤 지나자 식당 안은 어르신들로 꽉 찼다.

 

꼿꼿이 서서 350~400명의 밥을 푸고 나면 무릎도 아프고 목이 경직 된다고. 아침 10시부터 오후2시까지 봉사는 완전 중노동에 가깝다.

 

함께 봉사하는 박지원씨는 우린 못해요. 밥 푸는 일 계속 하면 손목 다 나가요.”라며 보여주기 위한 봉사라면 이렇게 꾸준히 못 하죠. 한 결같이 남편은 밥 푸고, 부인은 설거지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게 여간 존경스럽지 않아요라고.

 

이정국 박사는 행복나눔봉사단장인 부인 오선주씨와 첫째 금요일과 둘째 화요일에는 어김없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우직하리만큼 묵묵하다. 약속조차 봉사날을 피해서 잡는 부창부수 부부다. 2008년부터 10년 이상 밥퍼 봉사로 받은 최다 밥퍼상은 귀한 숨은 공적을 대변하는 증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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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속, 건강한 몸은 나의 사명.

흙속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한 설렘으로 다음날 새지평 사무실을 찾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가! 새벽같이 관악산 국기봉에 올라서 일출사진을 찍고 왔다는 이정국 박사의 모습은 활기차다.

 

안양에 둥지를 틀고 세무공무원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13녀 중에 2째 딸(1990) 정화의 출생은 운명의 소용돌이로 다가왔다. 태변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태어난 정화는 눈을 뜨고도 세상을 보지 못했다. 목조차 가누지 못한 체 앉거나 설수도 없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상태로 식사도 일일이 떠 먹이고 아가처럼 트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수발해야 했다.

 

의사는 통계적으로 20년은 생존한다고 했지만, 정화는 지금처럼 앞으로 언제까지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소변은 물론 밤에도 이불을 덮어 줘야 하기에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날 수는 없다. 부부는 왜 하필 우리 딸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한숨과 눈물 속에서 울고 또 울었다.

 

담임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정화를 보낸 것은 돌 볼 수 있기 때문이라딸로 인해 행복이 가득 하길 기도한다.”고 했지만 그 뜻을 도저히 이해나 납득할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준 이유는 건강치 못한 딸을 돌보라는 사명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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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정화를 돌보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바우처 도우미가 정화를 돌보게 되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부모가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 하자, 더불어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몸부림이 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돈만 있으면 사랑스런 딸을 고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감정평가사에 도전,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세무대학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 했기에 국가와 국민에게 늘 빚진 자란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 사는 길은 경제이기에, 감정평가사로써 풍부한 경험과 실물 경제를 바탕으로 나라에 헌신하고 싶었다. 그 일념 하나로 17년을 준비하며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4차례나 참패하는 족적을 남겼다.

 

튼튼한 재정이 뒷받침 되어야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늘 변함이 없었다. 나라와 국민에게 빚값는 심정이었기에 45기 또한 멈출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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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총선 출마의 변

전남 신안군 우이도에서 출생한 그는, 부친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화갑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자랐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 서울의 야간대학에 합격 했으나 등록금조차 낼 수 없는 가난 앞에 좌절하며 목울음을 삼켰다.

 

1년 후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다는 세무대학 합격으로 생활비와 등록금이 모두 해결되자 세상을 다 얻은양 뛸 듯이 기뻤다. 물 만난 물고기 같은 대학생활 속에서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며 다양한 봉사로 학교발전에 기여했다.

 

세무대학은 2년 과정으로 학위가 없었다. 세무공무원이 되어 업무와 가족부양이 벅찼지만 배움을 포기치 않고 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고려대학교 석사과정 정책대학원 면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교수는 2.3의 학점을 보며 이것도 점수냐고 물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8년 만에 졸업했다는게 뚜듯한 자존심이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그랬던 그가 석사과정을 결석없이 노력한 결과, 수석 졸업으로 받은 부상 금3돈을 고스란히 세무대학에 발전기금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하여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파수꾼이 될 것을 결심하며, 그는 21세기 복지국가와 후학을 위한 정통재정학 책을 최근 출간했다.

국립세무대학 내국세 전공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경제학석사.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제학박사의 이력은 그가 걸어온 발자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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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천대학교 글로벌경제학과 겸임교수
. 새지평연구원장. ()두요감정평가법인대표이사. ()한국청소년운동연합안양지회장 등등 수두룩한 직함을 갖고 있지만, 우직한 황소처럼 뭐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이정국 경제학박사!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온 뒤안길, 나라와 국민 앞에 헌신 할 수 있는 등용문을 기원해 보는 오늘의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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