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걸음마 뗀 문화도시 사업, 官 주도로 진행돼선 안 된다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 입력 : 2020/01/12 [03:44]

▲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

우리나라 도시 발전에서 '문화'는 한동안 관심 밖이었다. 한국전쟁을 거치고 나서도 일제강점기 공연장으로 쓰였던 '부민관'을 놓고 국립극장이 국회의사당과 겨루었고, 명치좌란 이름의 영화관이었던 '시공관'을 놓고는 서울시와 다퉜다. 1970년대 초까지도 외국의 유명 예술인이 내한하면 제일 좋은 공연장으로 이용한 곳은 이화여대 강당이었다. 경복궁 내 국립중앙박물관(1972년)이나 장충동의 국립극장(1973년)처럼 국가 주도로 문화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옹색함은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도시의 풍요함을 말하기엔 시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화재로 소실된 서울시민회관 자리에 당시 '동양 최대 규모' 세종문화회관이 1978년에 건립되었을 때, 공연장을 채울 공연물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 우려되어 다른 민간 시설들에 공연 대관을 자제하도록 협조 공문을 보낼 정도였다.

 

1980년대 들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예술의 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건립되면서 서울은 한 단계 도약했다. 전국적으로는 1990년대 주택 200만호 건설 달성을 위해 신도시가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되면서 문화가 없이 진행되는 도시 건설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OECD 가입에 즈음해서는 경제 성장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자각 속에 '문화복지'가 하나의 정책으로 부각됐다.

 

2000년대에는 문화가 도시 발전에 핵심 요소란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도시관광이 활성화되고, 낙후된 도시공간을 재생하고 창의 인력을 끌어와 도시 발전의 동력을 삼는 데 문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는 생각만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화시설 같은 하드웨어만을 늘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와 시민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선 시민들이 참여하고 일상의 문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도시의 전통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바탕으로 고유한 문화도시를 만들기보다는 성공 사례에 대한 단순한 모방이 많았다. 또한 실제 시민들이 참여하고 논의해서 사업을 만들기보다는 단체장 임기 내 업적을 가시화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관(官) 주도의 사업 수행이 드물지 않았다. 최근엔 문화자원이 밀집된 도시공간에서 지대 상승에 의해 초래되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로 지역의 문화적 역량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각 도시의 특성을 살리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도시를 법적으로 지정하여 기존에 겪어 왔던 문제점들을 개선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도시 지정이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법적인 기반을 갖추었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로 추진되어 온 결과, 지난 12월 말에 부천·원주·청주·천안·포항·서귀포·부산 영도구 등 7곳의 지자체가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법정 문화도시는 5년 동안 최대 국비 100억원까지 예산을 지원받는다. 여기에 더하여 인천 부평구·오산·강릉·춘천·공주·완주·순천·성주·통영·제주 등 10개 지자체가 예비후보도시로 지정되어 올해 말 법정 문화도시로의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도시 사업과 유사한 사례로 유럽에서 지난 30년 동안 수행되어 온 유럽문화수도의 경우, 선정되는 것이 올림픽 유치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문화수도 사업이 각 도시에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 연구를 보면 도시 이미지 변신, 민관 협력 관계 강화, 성장률 증가 등에 기여했다. 과연 우리는 그동안 겪었던 문제점을 극복하고 실질적으로 도시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도시 사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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