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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군왕검[檀君王儉] (1)
 
주필 김정대
 

▲ 주필 김정대     © 경기뉴스


우리나라를 세워주신 분이 한검 단군이신데 나라 이름을 아침이 고운 조선[朝鮮] 이라고 정하셨다.


지금으로부터 4350년 전인데 임금님의 명칭을 단군이라 일컬어, 나라를 세우신 초대단군이 한검 할아버지시다. 구분은 한인 하느님의 아들이신 한웅님의 후손이시다. 한웅님은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신단수 앞에 내려 오셔서 웅씨(熊氏) 부족장의 따님과 결혼하시고 배달국(倍達國)을 세워 한씨 부족이 1565년을 통치하였다.

배달국 중엽에 복희 씨가 있었는데 문화상을 맡았다.


그의 생각은 대권이었는데 한씨와 웅씨가 사돈을 맺으니 그런 꿈은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그는 자기부족과 문무성의 부하 직원들 중에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직원들을 이끌고 말800필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 나갔다.


도착한 곳이 황하 유역이었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은 몸에 진흙(황토흙)을 바르고 풀과 나뭇가지로 앞가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족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황하 유역에 당도한 복희씨는 “여기다.” “모두 멈추어라.”

일행은 황하 강변을 정착지로 정했다.


한족들 당시는 미개인들이어서 복희씨 일단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복희씨 일단은 무명옷을 입고 두건을 모두 쓰고 있었다.


당시 寒族과 漢族사이에는 크나큰 문명의 차이가 있었다. 이어서 漢族의 추장이 복희씨 앞에 큰 절을 올리고 자기네들을 이끌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은 복희씨 일당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들이라 생각했다. 복희씨는 그들에게 황제 칭호를 들으며 그 백성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800년 중국의 요순시대 전의 황제시대라 지금의 중국인들도 일컫는다.


한검단군 원년이 중국의 요임금 24년으로 세계 사학자 학술대회에서 공인되었으니, 공인 역사로는 중국이 우리 고조선보다 23년 빠른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고조선 이전의 한웅 할아버지의 배달국 1565년을 더하고 중국은 삼황오제 시절 복희씨의 통치기간 800년을 더하면 우리가 중국보다 742년의 역사를 더 갖고 있는 것이다.


한검 할아버지께서는 단군에 취임하시어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제정하시어 나라를 다스렸다. 천부경은 세상의 이치와 국가 경영 지침으로 81자로 되어 있는데 요약하면 “홍익인간 이세치화” 8자로 요약할 수 있다. “널리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하고 세상을 이치로 다스려야 한다.”라는 뜻이다.


삼일신고는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 예법이다. 참전계경은 국민을 다스리는 법이다. 하루는 천하절색 미녀를 데리고 중국 부족장 신농씨가 복희씨를 찾아왔다.

그는 황제를 대하는 예의를 갖춘 뒤, 그 미녀를 소개했다.

[제 딸 혜경입니다.]


[황제어르신께 받치겠습니다.]


복희씨는 난색을 보이다 미모에 휩쓸려 고개를 끄덕였다.


조강지처가 강짜가 센데 좀 시끄럽겠지 생각하면서도 “곧 날을 받아 식을 올려주겠소.”했다. 그래야만 한족을 다스리기가 편할 듯 싶었다. “그런데 신농부족장 어찌하여 따님이 과년토록 혼인을 시키지 않으셨오?”


“결혼시켜 짝 지워준지 석달만에 사위가 전쟁터에서 적장의 칼에 맞고 말에서 낙마하였는데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거 안됐구먼”


복희씨는 그녀를 화혜 부인 다음자리에 앉혔다.


배달기원 765년 복희씨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떠난 뒤 한웅 한배검은 문자 창제를 접어야 했다. 그것이 상형문자로 오늘날 중국의 한자의 원조다. 한편 한검단군께서는 27세에 단군에 오르시기까지 혼인을 아니 하셨다.


대신들이 모여 의논 끝에 상고를 드렸다. “한배검님 이제 나라도 바로 섰고 단군에 오르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황후를 서둘러 모셔야 되겠습니다.”

그러구러 석달 뒤 한검단군께서는 웅씨 족장 신고의 딸과 조촐히 혼사를 이루었다. 그 뒤로부터 한배검 단군께서 258세가 되실때까지 우순 풍조하고 백성이 늘어나면서 태평성대를 이룩하셨다.





 
기사입력: 2017/03/27 [21:18]  최종편집: ⓒ g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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